나의 첫 요트여행 - 후포에서 남해 상주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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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베르 댓글 0건 조회 1,874회 작성일 21-06-03 11:52본문
저는 2021년 4월 30일부터 5월 2일까지 경북 울진에서 남해 상주까지 2박 3일의 요트 딜리버리 투어에 참가하였습니다. 전문가가 요트를 특정장소까지 배달해 주는 것을 딜리버리라고 하더군요. 딜리버리할 요트는 원래 울릉도와 독도를 갔다가 남해로 돌어가던 길에 경북 울진에 기항을 했는데 이 요트를 남해까지 가져오는 겁니다. 저는 전문가도 아니고 막 면허를 따고 갈 길이 먼 초보지만 체험을 위해 동승했습니다.
렌트카를 이용해 4월 30일 새벽 3시 경북 울진 후포항 요트학교에 도착하였습니다. 울진군은 요트의 미래를 밝게 보았는지 군에서 직접 요트학교를 운영한답니다. 그런데 글쎄 요트학교 문이 굳게 잠겨 있어 결국 부두쪽으로 우회를 해 울타리를 넘는 등 갖은 쇼를 하며 짐을 요트에 옮겼습니다.
다행히 계류장에서 물은 충분히 주입할 수 있었습니다. 약 4백여 리터의 물이 들어갑니다. 그런데 갑판에 물구멍이 3개가 있는데 하나는 Water라고 쓰여 있고 나머지 두개는 Waste로 되어 있는데 나중에 선주님께 물어보니 워터는 상수 웨이스트는 중수라고 합니다.
우리 요트는 독일제 Hanse 458 입니다. 한제는 화려하진 않으나 거품없는 합리적 가격에 스키퍼 1인항해 가능케하는 자동화시스템, 펄링시스템을 갖추고 있습니다. 한제는 독일말로 한자동맹이란 뜻입니다. 대항해시대 새 항로가 뚫리면서 힘을 잃었으나 한때 힘 좀 쓰던 동맹으로 우리 식으로 하면 청해진같은 향수 부르는 작명이 되겠습니다. 45 피트 458 모델의 선주 댁까지 인도가격은 4억 중반입니다. 2021년 봄 현재 현지 가격이 부가세 없이 약 21만유로이고 독일 부가세 19퍼센트 포함해서는 25만 유로, 그러니까 약 3억 중반이니 유럽에서 배를 직구해 직접 한국까지 몰고 온다면 비용이 좀 절감될 수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거의 서울에서 부산간 4백킬로 정도를 2박3일에 숨차게 달렸습니다. 이렇게 2박3일동안 장거리를 달리다보니 항해 중에는 파도도 세고 해서 요리를 하기는 불가능했기에 정박을 했을 때 저녁에만 요리를 해 먹었습니다. 또 샤워실이 있었지만 2박3일동안 샤워는 포기했습니다. 뭔가 궁상맞다고도 느낄 수 있지만 이런 것도 다 요트의 매력으로 다가왔습니다. 요트에 화려한 이미지가 없지 않지만 현실에서 의외로 미니말리즘이 필요한 것이 요트이고 그런 결핍을 열린 마음으로 감내하는 것도 요트를 즐기는 하나의 방법이 아닌가 싶습니다.
첫날 저는 멀미와 정면승부해보겠다고 약도 준비 안했는데 너무 졸려(제가 잠이 좀 많아요) 선실로 내려가는 실수를 하면서 그러나 추위에 잠은 안오고 온몸으로 배의 진동을 느끼면서 멀미가 발병했습니다. 구토 그리고 후각적으로 예민해지는 증상을 경험했습니다. 동승자 중 한분이 담배를 피울 때면 어디에서 피우든지 바람이 어느 방향으로 불던지 상관없이 제 코가 담배냄새를 맡아내는 신기한 경험을 했고 그때마다 울렁거렸습니다. 다행히 저도 둘째날부턴 멀미를 졸업했습니다.그 졸업장 한번 받아 보려고 하루종일 화장실 한번 안가고 무조건 밖에서 버텼습니다. 밖에서 먼곳을 보는 것도 도움이 되고 특히 직접 핸들을 잡고 운전을 하면 운전에 집중해 신경쓰다보면 멀미가 사라진다는 것도 알게 되었습니다.
우리 여정에서 둘째날은 고난의 행군 시기입니다. 항로의 대형선박들을 피해 다녀야 했고 부산 지나자 2 미터 파도와 싸워야 했습니다. 대한해협은 원래 바람과 조류와 파도가 심한 곳으로 이곳을 항해하면 일류 항해사로 인정해준답니다. 저는 뜻밖의 소득으로 왜 조상님들이 저 코 앞의 대마도를 잡수실려고 하지 않았는지 그 심정이 조금은 이해가 되었습니다. 이 거친 바다 너머 저 황무지 섬은 그냥 개나 주어 버려라 하는 심정으로 이 해협을 자연이 그은 국경선으로 심정적으로 받아들였을 거 같습니다. 부산해협에서 2 미터 파도와 맞짱 뜨고 도장깨기하며 나아가던 중 이러다 파도 대신 우리 배가 깨지는 거 아닐까 하고 FRP 소재의 내구성이 걱정되기도 했습니다. 선장님은 FRP를 망가뜨리는 건 실은 파도보다는 훨씬 더 햇볕 때문이라며 아무일 없을 거라고 저를 안심시켰습니다.
우리를 괴롭힌 바람은 두번째 기항지인 매물도 앞에서 절정을 이루었습니다. 매물도 앞은 유독 바람이 세서 부두로 들어가려다 좌초하는 거 아닐까 싶었으나 부두로 들어서자 거짓말같이 평화가 찾아왔습니다. 훌륭한 마리나 시설이 되어 있어 정박 중인 요트들도 보였습니다.
이 매물도 이후엔 고생 끝 보람 시작입니다. 다음날 멋진 날씨에 안심이 된 우리는 출항 전 배 수선을 하기로 했습니다. 메인세일의 텍이 고리에서 풀려 애먹이던 걸 세일을 모두 내리고 30분 혈투 끝에 간신히 정비에 성공했습니다.
또 선수 저장실의 기름통에서 흘러나온 선저폐수를 제거 내지 수거했습니다. 기름은 울산 방어진에서 210 리터를 넣고 20 리터 기름통도 한 5개 예비했었는데 일반 기름통은 흔들리는 배에서 결국 샐 수밖에 없으니 기름통엔 돈 아끼지 말고 특수제작된 고가의 기름통이 꼭 필요하다 느꼈습니다.
서기 2021년 5월 2일은 이순신의 바다가 베르의 바다가 된 날입니다. 한번도의 보석처럼 한려수도를 점점이 수놓은 수많은 섬들이 제 품에 안겨든 날입니다. 조선 수군들이 노를 저으며 피땀으로 지켰을 이 바다에 드디어 섰다는 실감 속에서 리얼한 공간감과 거리감을 가지고 이름만 들었던 섬들이 알알이 제 머리 속에 들어와 각인되었습니다. 화창한 날씨에 알맞은 바람 좋은 사람들과 더불어 그림같은 경치와 자유로운 항해를 마음껏 즐겼습니다.
이날 여정의 하이라이트는 점심으로 고등어회를 먹으러 욕지도를 방문한 겁니다. 욕지도는 항구와 섬이 모두 복작복작 돗대기 시장을 연상시켰습니다. 욕지도를 떠나면서 저는 자꾸 뒤돌아보았습니다. 여수 덕충동 아파트 거실에서 망원경으로 50 키로 떨어진 욕지도로 추정되는 섬이 보인다는 저의 주장에 지인들은 차라리 제주도가 보인다고 해라 콧방귀를 낄 뿐이었으나 이날 되돌아본 욕지도의 실루엣은 정확히 렌즈를 통해 보았던 바로 그 모습이었습니다. 그밖에 평소에 가보고 싶어도 길이 없던 작은 섬들 갈도 삼존도 소치도 등이 우리의 평화로운 뱃길을 동행해 주었습니다.
마지막으로 어스름 저녁 무렵 남해 상주 은모래해변의 계류장에 배를 정박한 우리는 사람과 배 모두 무사히 목적지에 잘 도착한 것에 감사함을 느끼며 안도감과 함께 배를 뒷정리하고 고무보트 대신 실려있던 카약을 차로 옮기고 밥 먹고 가라는 선주의 호의를 뿌리치고 서둘러 길을 떠나 노량대교 밑에 한 횟집에서 회덮밥을 먹고 헤어졌습니다.
이번은 딜리버리라 장거리를 숨차게 달렸지만 요트의 묘미를 느끼려면 조금더 여유롭게 일정을 짜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45미트 약 14미터의 우리 요트는 최고 속도가 7노트 정도밖에 안되었습니다. 빨리 목적지까지 가려다 보니 엔진도 많이 사용해야 했고 돛을 폈을 때도 엔진을 함께 사용할 때가 많았습니다. 또 축범의 세계에도 눈을 떴는데 바람이 없더라도 메인세일을 조금이라도 펴두면 배의 안정성이 향상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바람이 좋으면 꼭 돛을 모두 활짝 펴야만 되는 게 아니고 반 정도만 펴도 훌륭히 돛의 기능을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즉 엔진과 돛의 다양한 조합이 가능하다는 것을 보고 배웠습니다. 이렇게 초보가 배워야 할 것이 많고 고수가 되려면 다양한 경험을 쌓고 계속 공부하는 게 필요하겠다고 느꼈습니다.
만일 훗날 제가 유럽에서 배를 사서 한국으로 가져오면서 대양항해를 하게 된다면 요트의 사이즈는 어느 정도 되는 것이 좋을까, 그리고 이에 걸맞는 소재는 무엇일까 등 궁금증이 많아졌고 앞으로 알아가고 공부해 나가야할 숙제들이 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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