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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설과 반전의 음식 삭힌 홍어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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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로드 댓글 0건 조회 1,703회 작성일 21-04-28 03: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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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주에서 오토바이면허와 소형견인면허를 따면서 나주국밥도 많이 먹었지만  마지막 날 저녁은 홍어삼합에 홍탁으로 마무리하였습니다. 나주에는 송현연탄불고기 그리고 구진포 민물장어거리도 유명한데 시간이 부족해 가보지 못한 것은 아쉽습니다.


사람들은 보통 음식에서 쓴 맛을 느끼면 싫어하거나 뱉어버립니다. 이는 자연스러운 반응입니다. 쓴 맛은 그 음식에 독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을 오랜 세월에 걸쳐 인류가 체득한 때문입니다. 이와 비슷한 맥락에서 홍어는 본능적인 영역에서는 쉽게 친해지기 힘든 음식입니다. 본능적인 거부감을 넘어서야 친해질 수 있는 음식입니다.


단백질이 부패하면 암모니아가 발생합니다. 화장실과 홍어에서 나는 바로 그 냄새입니다. 이 단백질 부패의 산물인 암모니아는 이 음식을 섭취하면 식중독에 걸리며 사망할 수도 있다는 위험신호이고 경고입니다.


그런데 잘 삭힌 홍어 냄새가 딱 이렇습니다. 그러니 무방비상태에서 아무 정보 없이 삭힌 홍어회를 접한 사람은 본능적으로 이를 거부하게 되어 있으며 이는 매우 자연스러운 반응이므로 결코 이를 탓하거나 강제로 먹으라고 역권할 일이 아닙니다.


그런데 여기서 끝나면 홍어의 서사가 완성되지 않습니다. 이 지독한 냄새 뒤에 숨어있는 역설과 반전의 모멘텀을 이해하면  홍어의 진가가 보이기 때문입니다. 단백질 부패 냄새가 식중독을 일으킬 위험신호라면 삭힌 홍어의 암모니아는 냄새는 비슷하면서도 발생하는 이유가 달라 식중독과는 상관이 없을 뿐 아니라 오히려 강력한 살균작용이 있어서 일체의 잡균이 서식하지 못하게 합니다. 즉 냄새는 비슷한데 기능은 전혀 반대입니다.


과거 비교적 먹거리가 풍부한 남도에서 한번 잔칫상을 벌이면 사흘 넘게 가기도 했습니다. 냉장고가 없던 시절에 잔치가 길어지면 음식이 조금씩 쉬게 됩니다. 이때 삭힌 홍어를 곁들이면 식중독을 예방하는 효과가 있다는 것을 남도사람들이 깨닫기 시작하면서 홍어회는 점점 잔치상에 없어서는 안될 음식으로 자리잡아갔습니다.


남도 일부 지역의 상여꾼들은 홍어 한접시를 비워야 길을 떠났는데 이런 풍속도 부패한 시체의 위험을 홍어가 방지해줄 것이라는 살균작용에 대한 믿음에서 비롯된 것일 겁니다.


이런 살균에 대한 믿음은 의연히 이어져서 코로나 환자가 홍어발효실에 들어가 냄새를 맡으면 폐속의 코로나까지 없애준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보았습니다. 그 진위를 논하고 싶지는 않고 그럴 지식도 없으나 적어도 홍어의 살균능력에 대한 믿음을 엿볼 수 있습니다.


홍어는 알칼리음식입니다. 잘 삭힌 홍어의 암모니아는 세포를 녹여버리는데 이때문에 맛있게 먹는 사람의 입천장이 벗겨지곤 합니다. 그때 여기에 궁합이 맞는 것이 산성인 막걸리입니다. 홍탁을 하면 홍어가 우리의 입천장을 벗겨내지 못하도록 중화시켜 주니 홍탁이 사랑받는 것에는 나름 이유가 있습니다.


또 홍어는 지구 생명체 중에서 가장 지방함량이 적은 생명체 중의 하나라고 합니다. 홍어가 대표적인 고단백 저지방 식품이라는 것의 함의를 한때 가난을 겪어본 기성세대들은 이해할 수 있습니다. 과거 고기 먹기가 힘들던 시절 설날 등 명절에 갑자기 고기와 기름기가 들어가면 이를 소화를 못시키고 설사를 하던 사람이 많았습니다. 그런 시절에도 홍어는 기름 많은 느끼한 음식을 소화하기 힘들어하는 서민들에게 먹어도 뒷탈은 없으면서 부족한 단백질은 채워주는 귀한 음식이기도 했습니다.


고단백 저지방의 홍어에 돼지고기와 묵은지를 곁들여먹는 홍어삼합 또한 훌륭한 영양상의 균형과 맛의 조화를 자랑합니다. 제가 먹은 홍어일번지 명가식당에서는 이 삼합을 김에 싸먹도록 추천하던데 이 또한 좋았습니다.


이런 여러가지 맥락에서 볼 때 삭힌 홍어는 단지 특이하거나 엽기적인 음식 중의 하나로만 볼 것이 아닙니다. 언젠가 한국의 삭힌 홍어의 진가를 알아보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세계 사람들이 그 진미를 함께 즐길 수 있는 날이 오기를 기대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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