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접 막걸리를 담궈 먹으면서 느끼는 소감
페이지 정보
작성자 베르 댓글 0건 조회 124회 작성일 24-09-14 13:54본문
몇년전 막걸리를 만드는 오락프로그램을 본 적이 있습니다. 그 프로그램을 보고 오히려 막걸리에 정나미가 떨어졌던 기억이 있습니다. 고두밥과 누룩을 섞는다고 맨발로 밟아대는 것을 보고는 구역질이 날 거 같았고 이런 식으로 막걸리를 만드는 거라면 절대 사먹고 싶지 않았습니다.
한국 방문시 가끔 사먹는 막걸리는 제 입맛에 너무 달았습니다. 저는 과거 술을 좋아하시는 외할아버지의 술 심부름을 하곤 했습니다. 빈 주전자를 갖고 마을 양조장에 가서 막걸리를 담아오는 것입니다. 그때 돌아오는 길에 몰래 한두모금 마셔보았던 막걸리가 제 기억 속의 막걸리의 원형입니다. 그런데 그 막걸리는 달지가 않았습니다.
이런 저런 이유로 저는 코로나 시국으로 집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아졌을 때 직접 막걸리 양조를 시작했습니다. 세계여행을 다닐 때 직접 막걸리를 양조해 마시면 좋겠다는 생각도 있었습니다.
처음엔 정성을 많이 들였습니다. 만두찌는 솥으로 고두밥도 만들고 누룩은 볕을 쐬인 후 뭉친 누룩은 일일이 절구질로 분쇄하는 과정을 거쳤고 나중에 식힌 고두밥과 누룩을 섞어 정성스럽게 치댔습니다. 그리고 물도 최대한 소량을 첨가해 퍽퍽한 상태로 정성스럽게 막걸리를 만들었습니다.
그런데 이런 정성에 비해 가끔 결과가 좋지 않았습니다. 막걸리가 실패했을 때 나타나는 가장 큰 증상이 막걸리가 시어지는 것입니다. 저는 몇 번의 실패 끝에 이제는 실패하지 않으면서도 훨씬 쉽게 막걸리를 제조하는 방법을 알아내서 일상적으로 막걸리를 직접 제조해 먹고 있습니다. 양조법이 단순한 것에 비해 결과는 좋아서 술을 잘 안먹는 아내도 제가 담근 막걸리만큼은 찾습니다.
알콜을 만들어 내는 것은 효모입니다. 효모는 포도당과 같은 단순당을 먹이로 이용합니다. 그런데 쌀과 같은 곡식의 전분은 복합당이라 그 사슬을 끊어서 단순당으로 만들어야만 효모의 먹이가 됩니다. 이 과정을 당화라고 합니다. 맥주는 보리의 싹을 틔우면 보리가 자신의 자양분을 성장에 이용하기 위해 당화효소를 만들어내는데, 이를 이용해, 즉 맥아(몰트)를 이용해 당화를 하고 이것이 맥주의 원료가 됩니다. 한국처럼 습한 아시아에서는 공기중의 곰팡이가 전분에 달라붙어 자기가 먹을려고 당화효소를 분비하는데 이것이 바로 누룩입니다. 이렇게 세상에는 맥아 혹은 누룩 이렇게 대략 두 종류의 당화법이 있고 이를 거쳐 세상의 대부분의 술이 만들어집니다.
누룩에는 당화효소만이 아니고 약간의 효모도 묻어있습니다. 그런데 충분치는 않습니다. 초반은 잡균과의 전쟁에 대비해야 합니다. 특히 김치를 시게
만드는 젖산이라는 놈이 무섭습니다. 그러므로 미리 쌀에 누룩은 많이 섞고 정성껏 치대서 당화와 효모증식이 더 잘 이루어지도록 해 전쟁을 준비합니다.
그런데 이런 수고를 경감할 수 있는 간단한 방법이 있습니다. 누룩에 부족한 효모에 기대지 말고 시중에서 흔히 구할 수 있는 빵 만들 때 쓰는 효모(이스트)를 조금(불과 몇 그램정도) 추가하면 여러가지 수고가 경감됩니다. 쌀과 누룩을 치대지 않아도 되고 누룩을 조금만 넣어도 되고 반대로 물은 더 넉넉하게 부어도 됩니다. 물이 넉넉하면 치대지 않아도 뭉친 부분은 알아서 다 풀리고 소량의 누룩이 구석구석 쉽게 침투해 많은 쌀을 쉽게 당화시킵니다. 그리고 이때 잡균들도 당화된 먹이를 노릴텐데 이 초반의 승부처에서 추가로 넣어준 이스트가 금세 환경을 지배하는 우세종으로 치고 나가게 되는데 이렇게 되면 더이상 잡균 서식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됩니다. 효모는 알콜이라는 독성물질을 만들어내는 방법을 통해 잡균의 서식을 억제하고 결과적으로 먹이를 독차지하는 욕심쟁이이기 때문입니다. 단 욕심쟁이일 뿐만 아니라 바보이기도 한데 결국 스스로 만든 알콜에 자신도 죽게 되기 때문입니다.
효모는 산소가 충분히 공급되면 알콜생산이 아니라 자가증식을 해서 수를 불립니다. 초반에 술통을 휘휘 저어주는 이유가 산소 공급을 위해서입니다. 발효초기에는 효모의 증식은 바라는 바입니다. 술통 아랫부근까지 산소가 침투할 수 있도록 휘저으면서 거품을 만들어 줍니다. 처음에 산소공급이 충분치 않아 효모증식이 충분히 안되고 우세종으로 자리잡는 시간이 지연되면 금세 잡균들이 판치는 세상이 되어 술이 시어질 수 있습니다.
무한정 효모증식이 목표는 아닙니다. 우리 목표는 알콜생산입니다. 어느정도 증식이 되었다 싶으면 혐기성 알콜발효를 유도해야 합니다. 즉 술통을 거의 밀폐해야합니다. 완전 밀폐는 아닙니다. 알콜발효시 발생하는 이산화탄소가 빠져나갈 구멍은 약간 놔둡니다.
알콜발효가 되어 술이 보글보글 잘 끓어오르기 시작하면 더이상 잡균 걱정은 끝입니다. 효모는 번식에 매달릴 수 없는 환경이 되면, 생존을 위한 최소한의 열량만 자신을 위해 사용하고 나머지 대부분은 다른 경쟁자가 접근 못하게 독성 물질로 바꾸어 놓는데 이게 알콜입니다. 일종에 퉤퉤 침발라놓는 행위죠. 알콜때문에 다른 균들이 들러붙질 못하는 건 좋은데 약 15정도로 알콜도수가 높아지면 심지어 효모자신도 알콜을 견디지 못하고 죽어버리는 건 아이러니입니다. 대략 자연에서 자연적으로 생성되는 술은 자연상태에서 약 15도 정도의 알콜도수가 나오며 효모가 특급 우량종인 경우 최대 20도정도까지도 가능합니다. 이렇게 만들어진 술을 끓여 증류시켜 도수를 더 높인 것이 위스키, 보드카와 같은 증류주들입니다.
약 36 ATP의 열량을 가진 포도당에서 미련한 효모는 자기를 위해선 약 2 ATP만 이용하고 24 ATP정도의 열량을 가진 알콜을 만들어냅니다. 나머지는 알콜 만들어낼 때 발효과정에서 날아가버린 겁니다. 즉 쌀 3가마로 발효를 하면 결과적으로 쌀 두가마에 해당하는 알콜이 남게 되고 쌀 한가마는 허공에 날리는 셈입니다. 이런 점에서 알콜은 사치품입니다.
예전에 마을잔치를 위해 대용량 막걸리를 담글 때 이 막걸리가 잘못되면 과거엔 감당하기 힘든 타격이었을 겁니다. 그러므로 최대한 실패의 경우의 수를 줄일 수 있는 보수적인 방법이 자리를 잡았을 것으로 짐작됩니다. 그래서 옛사람들은 초반에 재빨리 효모가 우세종으로 자리를 잡도록 쌀을 대량의 누룩과 함께
정성껏 치대거나 밑술을 만들어 미리 증식한 후 성공한 밑술을 안전핀으로 사용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양질의 이스트를 쉽게 시중에서 구할 수 있는 현대에 외서는 일반인은 그냥 간단히 시중의 이스트를 조금 추가로 넣어주는 방법을 사용하면 됩니다. 과거에는 효모가 뭔지 정확히 몰랐지만 지금은 사용하지 않을 이유가 없습니다. 효모를 추가하면 소량의 누룩만 사용해도 되고 힘들게 치대지 않아도 물도 좀 넉넉히 부어주면 다 알아서 당화되고 알아서 효모도 잘 증식합니다.
얼마나 막걸리 만들기가 쉬운지 보시죠. 쿠쿠밥솥으로 6인분밥을 두번 해 12인분을 만듭니다. 그럼 대략 2킬로 정도가 됩니다. 약 10리터의 술통에 밥과 소량의 누룩 그리고 물을 넣어 10리터 술통의 약 80 퍼센트 정도를 채웁니다. 나중에 발효과정에서 이산화탄소가 배출되고 효모 활동이 왕성해지면 내용물이 부풀어 넘칠 수도 있으므로 술통의 일부분은 비워두는게 좋습니다. 처음 며칠은 아침저녁으로 저어주라고 하는데 물이 넉넉히 들어갔다면 심지어 이렇게 저어주는 과정도 효모 투입 후 호기성 증식을 위해 저어주는 초반단계 말고는 딱히 필요 없습니다. 좀 게으를 필요가 있습니다. 게으르게 막걸리를 내버려둘수록 역설적으로 막걸리가 잡균으로부터 오염될 가능성도 줄어듭니다.
저는 막걸리를 만들기 위해 쌀을 씻을 때부터 단 한순간도 쌀을 만지지 않습니다. 쌀을 씻을 때도 밥주걱으로 휘휘 저어주면 될 걸 손으로 바득바득 씻을 이유가 없고 밥물 양을 맞춘다고 더럽게 밥물에 손바닥을 얹어볼 필요도 없습니다. 오히려 접촉을 최소화하는게 좋고 시간이 남는다면 기구들을 살균한다든가 양조에 사용할 물을 한번 끓인다든가 하는 식으로 살균을 하는 건 나쁘지 않습니다. 그런데 시중에서 산 10리터짜리 플라스틱통은 조금 뜨거운 물이 들어가니 금세 모양이 찌그러지더군요. 그러니 최소한 살균할 때 열에 견딜 수 있도록 유리로 된 걸 사용하는게 좋겠습니다. 제가 집에서 사용하는 것은 원래 우유통으로 만들어진 10리터짜리 알루미늄통입니다. 이것은 금속으로 되어 있어 튼튼한 데다 필요한 경우 밀폐도 완벽히 되는 만큼 여행을 다닐 때도 양조해 먹을 때 편리할 것으로 기대합니다. 그리고 양조에 쓸 물을 끓여 통에 넣어두고 뚜껑을 닫아두면 통이 충분히 살균이 되니 편리합니다.
사실 자가양조 막걸리는 만들기도 쉽고 맛도 시중 막걸리보다 좋습니다. 그런데 쉬운 막걸리양조를 복잡하게 만드는 불필요한 제조법이 너무 시중에 퍼져 있어 많은 분들이 엄두를 못내는 거 같습니다. 앞으로 간단하고 위생적인 막걸리 양조가 더 대중화되어 많은 이들이 쉽게 양질의 막걸리를 접할 수 있게 되면 좋겠습니다.
참고로 첨부한 사진속의 분홍빛 나는 막걸리는 부산물로 나온 술찌게미가 아까워 집에 있는 과일들과 함께 끓여 본 건데 나름 맛이 좋았습니다. 앞으로 여러가지 실험을 해 볼 생각인데 가끔 리포트를 하겠습니다.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